정보사회의 이해

정보 기술의 성격

Oliver_Twist 2022. 5. 26. 09:33
인류의 생활에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낸 정보통신 혁명의 기점을 언제부터 잡는가의 문제는 산업혁명의 기원을 추정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러나 기술혁명을 수많은 신기술이 유사한 시기에 급속히 만개하고 확산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과 사고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 시기로 파악한다면, 그러한 의미에서의 정보혁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개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우리가 논의하는 수많은 정보기술이 본격적으로 확산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에니악이 만들어진 지 50년을 넘어선 오늘날 인류에게 컴퓨터나 정보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계가 인간의 모든 생활을 하나의 시간으로 통합시키고, 산업자본주의에 기초한 일상성의 짜임새를 규정하게 되었듯이 컴퓨터와 정보기술은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인류의 삶을 연결하게 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제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함께 존재한다. 슈퍼마켓, 자동차, 가정, 사무실, 병원, 은행, 극장, 심지어는 커피숍에서조차 컴퓨터는 작동하고 있다. 인간과 정보기술이 함께 연결되면서 인간 진화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기본적으로 컴퓨터라는 발명품과 이에 기초한 수많은 기술이 일상성의 모든 구석에 스며들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컴퓨터와 정보기술은 어째서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는가. 이는 이 기술이 가진 몇 가지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속성들 때문이다. 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그것의 보편성에 있다. 어떤 기술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공간적 이동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고 이러한 능력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함으로써 인류의 생활에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컴퓨터의 두 번째 속성은 속도에 있다. 컴퓨터는 정보의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해 왔다. 만약 컴퓨터의 빠른 정보처리 능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금융거래, 전화 교환, 인구통계는 도저히 처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정보처리기계의 도움이 없는 현대사회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의 세 번째 속성은 저장능력에 있다. 컴퓨터 시스템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이러한 데이터들을 효과적으로 불러오고, 필요에 따라 가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뇌에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고, 이렇게 저장된 정보들을 필요한 상황에서 끄집어내면서 일상적 행위를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개별 두뇌의 정보저장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두뇌의 정보저장 능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인간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엄청난 정보를 인간들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되었는데, 바로 공유된 정보의 저장장소가 곧 문화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 문화적 공간에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축적해 왔고, 이를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기 위해 노력해 왔고, 공유된 문화공간에서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필요에 따라 가져다 활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바로 이 노력의 역사가 곧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과정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정보저장과 전달의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혁명적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종교혁명과 인쇄술 간의 관계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는 과거 인쇄매체 시대의 정보저장 수단을 대체하는 훨씬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정보저장과 공유 및 활용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컴퓨터의 네 번째 속성은 신뢰성에 있다. 신뢰성은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와 지식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발전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주어진 프로그램의 한계 내에서 거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가끔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실수는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의 오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제한된 두뇌의 용량으로 한정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므로 항상 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한된 판단을 하는 데 익숙해 있으며, 인간의 두뇌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이 같은 인간의 두뇌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면서 오차 없는 판단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높은 신뢰성을 갖는 정보처리 능력을 지닌 컴퓨터는 인간처럼 애매하고 어려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정보 상황에 신뢰성 있는 판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는 특화된 능력에서는 인간을 능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의 다섯번째 속성은 연계성에 있다. 컴퓨터가 처음 도입될 때 그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극히 부분적으로만 확장한 하나의 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컴퓨터는 곧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점으로만 존재하는 컴퓨터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선도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두뇌의 효율성이 수많은 뇌세포 간의 연계성의 정도에 좌우되듯이 컴퓨터 간의 연결은 확장된 인간의 지적 능력들이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두뇌가 수많은 뇌세포가 함께 모여 구성하는 하나의 사회, 소우주인 것처럼 정보화 사회는 확장된 인간의 정신적 능력들이 더 큰 사회적 네트워크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한 지적 결합체를 구성하는 소우주 간의 소통적 능력의 향상 정도에 따라 정보화 사회의 발전 정도가 가늠될 수 있다. 컴퓨터의 이러한 속성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일상적이고, 위험한 일의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내게 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기존의 노동자들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보다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크게 신장시켜 준 것에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불확실한 상황은 정확한 계산에 기초한 신속한 문제해결과 이에 기초한 의사결정능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능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보적 주체들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연결고리들과 연결되는 길의 성능, 소통되는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연결의 질서가 네트워크의 성격을 결정한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기 두뇌와 외부 환경이 연결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닫힌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외부 세계와의 정보 소통이 차단되었다는 데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열린사회는 정보의 소통성이 높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이 활발히 공유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창조적 대응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극대화라는 의미에서의 정보화는 인간 역사의 핵심적 측면이며, 정보 기술혁명은 이 핵심적 측면의 급속한 진화 및 발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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